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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어린이집 등·하원 책임진 운전기사 박영복 씨

2024-07-17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정책주간지 K-공감
17년 어린이집 등·하원 책임진 운전기사 박영복 씨
'내 일을 한 것 뿐인데 왜 유명해졌는지… 운전대 떠났어도 아이들 안전 돕고 싶어'

    “이게 무슨 일이래요. 그냥 내 일을 한 건데 내가 왜 유명해졌대요?”
    최근 대구 북구의 한 어린이집 운전기사의 마지막 출근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영상 속에서 어린이집 직원들은 운전기사 박영복(77) 씨를 향해 “수고하셨습니다. 건강하세요”라며 힘찬 박수를 보냈고 박 씨는 떡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껐다. 박 씨는 17년 동안 사고 한 번 없이 어린이들의 등·하원을 책임져왔다.

 
17년 동안 어린이집 버스를 몰며 아이들의 등·하원을 책임진 박영복 씨의 퇴직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 C영상미디어)



    박 씨의 하루는 오전 7시까지 어린이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다음은 마당 주변을 거닐며 밤사이 더럽혀진 곳은 없는지, 손볼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평소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이다 보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오전 8시 30분이 되면 버스에 시동을 켜고 등원하는 아이들을 태우러 나간다.
    냉큼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를 붙들고 울며 어린이집에 안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박 씨가 운전석에서 내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막 울어요. 그럴 때 내가 후다닥 내리면 울던 아이가 ‘할아버지’ 부르면서 쫓아와요. 아이를 안아서 자리에 앉히면 웃음이 절로 나요. 내가 선생님들보다 아이들과 더 친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해요(웃음).”
    어린이집 소풍날이면 꼭 업어달라고 보채던 아이가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됐다. 우연히 동네에서 마주칠 때면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한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지난 3월 말 박 씨는 척추관협착증 때문에 운전대를 놓았지만 여전히 어린이집에 들러 텃밭 정리를 하거나 토끼를 돌보는 등 무보수로 손을 보탠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성인이 되자마자 버스 운전기사 일을 했어요. 시외버스도 몰고 고속버스도 몰고 운전경력만 50년 정도 되네요. 고속버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무사고 경력을 인정받아서 포상으로 해외여행도 가봤어요. 정년퇴직을 한 이후 여기 어린이집 버스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집 버스도 사고 없이 운행했다고요.
    아이들이 타고 있잖아요. 무조건 아이들 안전이 우선이죠. 괜히 속도내서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아이들이 앞으로 쏠려요. 그걸 방지하려고 속도를 최대한 줄여서 운전했죠. 천천히 달리면 사고날 일이 없어요.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직업일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탈 때마다 “딸깍”하고 안전벨트 매는 소리가 나야만 출발을 해요. 운전석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여도 명확하게 들리더라고요. 
17년 동안 수많은 아이를 만났겠어요. 어린이집을 졸업한 후에도 본 적이 있나요?
    그럼요. 큰 동네가 아니어서 지금도 오가며 봐요. 요즘은 정원이 90명이 채 안되는데 처음 왔을 때는 150~160명이었어요.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워서 부르면 학부모들이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자라도 어릴 때 얼굴이 남아서 알아보겠는데 이름은 자꾸 잊어버려요.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죠.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이름이 간신히 생각난다니까요(웃음).
    박 씨는 인터뷰 날 어린이집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야외 활동 중이던 몇몇 아이는 박 씨 옆에 거리낌 없이 다가가 말을 붙였다. 시소를 태워 달라며 박 씨의 손가락을 이끄는 아이도 있었다. 어린이집 직원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인 듯했다. 

 
박영복 씨가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퇴근 이후는 어떻게 보냈나요?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저녁 6시쯤 돼요. 또 어린이집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일거리가 보이면 해놓고 늦게 귀가하기도 했죠. 남들이 볼 땐 참 이상할 거예요. 본인 집도 아니면서 뭐 그렇게 유난이냐고(웃음). 근데 저는 이렇게 살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한 가지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아이들 웃음을 보면 ‘해두길 잘했다’ 싶고 그래요.
출근하지 않는 주말은 허전했겠어요.
    그날이 더 바빠요. 오히려 아이들이 없으면 교실 곳곳을 살필 수 있잖아요. 주변에서 “왜 주말까지 나와 일을 하느냐, 놀러도 안가냐”라고 하는데 솔직히 놀러갈 데가 없어요. 혼자 산 지 20년 정도 됐는데 가족한테 잘하지 못했던 만큼 아이들한테 마음을 쏟았던 것 같아요. 
퇴직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땠나요?
    척추관협착증 때문에 왼쪽 다리가 당겨서 어쩔 수 없었어요. 운전할 때 왼쪽 다리를 안 쓰긴 하지만 혹시라도 증상이 도지면 아이들이 위험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일손을 아예 놓진 못하겠어요. 오늘도 어린이집 뒤뜰에 출산을 앞둔 토끼가 있어서 한 번 더 살피고 왔어요.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운전 일을 할 것 같아요. 운전대를 잡으면 마음이 안정이 돼요. 적성인가 봐요(웃음).